모양성의 봄
고창뉴스 gcnews@gcnews.kr
2008년 03월 10일(월) 14:36
모양성의 봄

고창의 봄은 고창읍성(모양성))에서 처음으로 시작된다고 고창사람들은 믿는다.
고창읍성에 진달래, 개나리가 활짝 피어야 진짜 봄이 온 것이다.
고창사람들은 고창읍성과 관련된 추억 하나쯤은 누구나 갖고 있다. 그것도 꽃피는 춘삼월이면 아지랭이 피어나듯이 소중한 추억이 봄과 함께 소록소록 돋아난다.
그런 고창읍성에 봄이 왔다. 아니 오고 있다.
모양성 성벽 밖으로 철쭉이 상춘객들을 향해 손짓하며 흐드러지게 피어있다.



아직은 약간 이른 듯 하지만 봄햇살에 살랑데는 진달래, 개나리, 철쭉이 한결 부드러워진 춘풍에 실려 봄나드리 채비를 서두르고 있다.
이맘때 쯤이면 고창에는 선운사 춘백과 매화의 꽃망울을 함께 볼 수 있는 행운을 만날 수 있다.


고창읍성은 고창 시가지의 한 중심에서서 고창의 역사를 함께 해 왔다.
일명 모양성으로 불리우는 고창읍성은 고창군 남쪽 성주봉인 장대봉(108m)에 좌청룡 우백호의 지세를 최대로 이용하여 축조한 성곽이다.
이 성곽은 모제석축이 아니라 모서리 이음의 공법으로 축조하였다.
동, 서, 북의 3문과 치 6곳, 수구문 2곳, 옹성 등 전형적인 성곽 틀을 유지하고 있는 고창읍성은 전국에서 유일하게 원형이 보존되어 있어 역사적 가치와 그 자태를 한껏 더 뽐을 내고 있다.
고창읍성은 동쪽으로는 고창의 주산인 방장산, 서쪽으로는 서원평 건너 서산, 남쪽으로는 봉맥을 넘어 추령산, 북쪽으로는 전면의 자연 방어물인 고창천을 건너 흥덕으로 통하는 중요한 지점이다.

무병장수 기원하는 답성놀이


「답성놀이하며 무병장수 하세요」
성을 한 바퀴 돌면 다릿병이 낫고 두 바퀴 돌면 무병장수하고 세 바퀴 돌면 극락왕생한다는 전설 때문에 윤달이면 부녀자들의 답성놀이가 줄을 잇고 있다. 윤달 중에서도 초엿새, 열 엿새, 스무 엿새는 하늘문이 열리는 날로 전해져 답성객들로 크게 붐빈다.
성을 돌 때에는 돌을 머리에 이고 성을 세 바퀴 돌아야 한다.
머리에 인 돌을 성입구에 쌓은 뒤 손수 가꾼 오곡을 백지에 펴고 삼배를 올리며 소망과 무병장수를 기원하면 된다.
약 1.7km의 고창읍성을 한 바퀴 도는데는 30분 정도 걸린다.

고창읍성안에는 과거 동헌(東軒)이나 관리들이 출장 와서 묵었던 객사(客舍) 등을 그대로 옮겨 놓아 예스런 분위기가 가득차 있다.
또한 너른 잔디밭과 울창한 수림이 조화를 이루고 있고 사시사철 계절에 따라 꽃이 피는 산책로도 잘 정비되어 있어 성외곽을 가벼운 마음으로 둘러볼 수 있는 곳이다.
최근에는 사극의 주요 촬영장소로 많은 사람들이 찾고 있다.



동헌과 내아
조선시대의 각 고을에는 중앙에서 파견된 수령이 정무를 보던 정사를 세웠는데 이를 동헌이라 하였다. 동헌 옆에는 내동헌 곧 내아라고 하는 수령의 살림집도 있다. 동헌은 평근당이라는 당호의 현액이 석전 황욱의 필치로 새겨 걸었다.



객사(모양지관)
조선시대에는 각 고을에 객사라고 하는 관아가 있었는데 조정에서 파견된 관원들의 숙소로 사용되었으며 객사 중앙에 임금을 상징하는 전패를 모시고 매월 초하루와 보름날 그리고 나라에 경사와 궂은 일이 있을때 대궐을 향하여 예를 올린 곳이다.



풍화루와 공북루
이 건물은 고창읍성 연못옆에 세운 2층 누각이다.
문헌에는 성내의 빈풍루와 풍화루가 있었다고 전해오고 있으나 건물과 연못은 모두 없어지고 터만 남아있던 것을 1988년에 발굴조사하여 확인된 유구와 각종자료를 참고해 풍화루는 1989년에, 연못은 1990년에 원 모습으로 복원했다. .

고창읍성 야간경관


정문인 공북루(북문)와 등양루(동문), 진서루(서문)등 3개소의 성문이 있는데 성문앞에는 적으로부터 성문을 보호하기 위하여 옹성을 둘러쌓고 그 위에 여장(여담)을 쌓아 성안에서 밖을 살필 수 있는 현안과 총을 쏠 수 있는 총안(근총안, 원총안)을 만들어 놓았다.
공북루 전후 사적기와 상량문에는 순치 3년 (인조 24년 : 1646) 병술 12월에 공북루를 소건하고 그 후 3회에 걸쳐 중수했다는 기록이 있다.

고창읍성은 ?
조선시대 초기에 쌓은 성으로 세종때 시작해 단종< 端宗 > 원년(1453)에 축성됐다.
나주진관, 입암산성등과 더불어 호남대륙을 방어하는 요충지였다.
일명 '모양성'이라 하며 신라 말엽에 도둑들이 많은 처녀들을 붙잡아갔다는 방등산가< 方等山歌 >와 관계되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성벽은 자연석으로 쌓았으나 안팎을 잘 맞추어 쌓아 잘 보존되어 있는 편이고, 둘레가 1,680m, 높이는 4m에 달한다. 여장< 女墻 >이 538개, 옹성< 甕城 >이 3개소, 장대지< 將臺址 > 6개소와 해자< 垓子 > 등의 전략적 요충시설이 갖춰져 있었다.
성내에는 동헌< 東軒 >, 객사< 客舍 > 등 22개 건물이 있었으나 지금은 공북루< 拱北樓 >와 작청< 作廳 > 등 몇몇의 건물들이 남아 있다.
돌을 머리에 이고 성벽 위를 한 바퀴 돌면 장수< 長壽 >한다는 전설에서 풍속화된 놀이가 해마다 많은 여성들에 의해 벌어지는 진풍경을 볼 수 있다.
1965년 4월 1일 사적 제 145호로 지정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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